칼럼

물방울은 계속 새어나오고, 우리 사이에 흘러다닌다.

민주인권기념관 기획전시 잠금해제 리뷰
물방울은 계속 새어나오고, 우리 사이에 흘러다닌다.

한윤아(독립연구자·시각문화연구자)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는 첫 기획전시 <잠금해제 Unlock>가 9월 29일까지 진행 중이다.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의 기획으로 일곱 팀의 작가(잭슨홍, 정이삭, 언메이크랩, 백승우, 김영철, 진달래&박우혁, 홍진훤×일상의 실천)가 참여하고 있다.

이 전시는 디자인의 맥락에서 사회와 관계 맺는 동시대의 새로운 방법들을 제안하는데, 그 방법은 이제껏 공공과 일상 영역에서 디자인에 대해 일반적으로 기대해오거나 통용해온 것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나온 민주화의 서사, 다른 장르의 시각적/문화적 재현이 불러일으켰던 정서의 파동과도 겹치지 않는다.


민주인권기념관 기획전시 <잠금해제> 포스터


22년만에 '잠금해제'된 민주인권기념관

전시장소인 민주인권기념관은 1976년 남영동 대공분실로 건축된 이후 죽 경찰이 운영해오다 2018년 1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이관되며 이제서야 "잠금해제"되었다. 기념관은 기억을 보관하는 장소이자 역사에 대한 해석들이 충돌하는 담론 공간이다. 독일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닮은 제주 4.3 기념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제주 4.3 사건에 대한 당사자들의 기억과 증언, 객관적 문서와 사료들이 모였고, 거기에 예술로 재현된 기억들이 더해져 있다.

시대에 따라, 세계사와 동아시아 정세의 맥락에 따라 이들은 다시 편성되거나 새롭게 해석된다.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의미의 두께가 두터워지고 새로운 내러티브로 구성되어간다. 그 내러티브의 마지막 장이자 출구 공간은 정권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역사 해석의 주체가 되려는 힘들의 경합을 드러내게 된다. ‘기념관의 문화 정치'는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러므로 <잠금해제>는, 근현대사에 대한 해석의 작업이면서 동시에 ‘기념관'이라는 역사적 기억 장치를 비평하는 전시로도 볼 수 있다.

디자인 역시 근대의 산물로, 일반적으로 이성과 합치되는 질서를 만들고 균형과 조화를 아름답게 구성하는 작업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는 분단국가 한국에서 근대적 이상을 추구하려던 시도들이 만들어낸 기형적 행태들에 대해 사실을 기반으로 정확하게 지적함으로써 한국적 “근대화”의 맹점을 드러낸다.


건물을 재현함으로써 권력을 해체하는 작업들


잭슨 홍, <빈칸>


잭슨홍은 간판 옥외구조물을 전시장인 건물에 달았다. 작품의 정보를 표시하는 글쓰기 형식을 빌어서 만든 거대한 이름표인데, 작가의 이름, (빈 칸), 작품의 재료, 제작 연도가 나열되어 있다. 아무런 비판적 언급을 하지 않은 채 그저 사실의 한 측면을 슬며시 드러내고, 대놓고 커다랗게 “전시” 했더니, 뻥 뚫린(빈 칸)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건물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맥락을 제안한 셈인데, 그럼으로써 예술사를 써온 어떤 관습, 즉 예술 혹은 작업의 자율성을 옹호하고 사회적 맥락을 유리시키는 행위들이 왜 어불성설이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사례가 되었다.

“확인 가능한(객관적) 정보들"과 비어있는 ‘빈 칸'은 이 건물-작품이 가진 모순이자 곤란함이다. 건축가(작가)의 이력 안에서도 슬며시 삭제된 작업, 이름을 갖지 못하는 혹은 제목을 가져서는 안 되는 커다란 덩어리, 모두가 보고 있지만 없는 것처럼 취급해야 하는 그 덩어리는 쉼표와 쉼표 사이의 빈칸으로 재현된다.


진달래&박우혁, <적색 사각형들>


이 건물-작품의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자기충족적인 요소들은 세로로 길게 난 창들로 완결된다. 진달래&박우혁의 [적색 사각형들]은 이러한 요소에 붉은색을 더해 패턴이 도드라지게 했다. 이 기이한 세로 창은, ‘안에서 밖을 조망하거나 위치를 가늠할 수 없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음’, ‘여기서 뛰어내려 죽음을 선택하거나, 자신을 거기에 있음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권리/인간의 존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표명하는 요소로 나타난다.

이러한 표명들은 너무 담담하고 정교하게 제 기능을 하는데, 나선형 계단은 중간 출구가 없고 쿵쿵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도록 했다든가, 조명 조정 장치를 방 밖에 만들었다든가, 정문 간판을 “해양연구소”라고 달았다든가 하는 간과할 수 없는 디테일로 만들어졌다. 진달래&박우혁은 이러한 기이한 요소들을 신문 형태로 꼼꼼히 기록, 발행하여 배포하고 있다.


정이삭, <계단 너머>


정이삭은 이 건물-작품이 자신의 파시즘을 위해 강하게 조합한 재료 물성을 해체해버리는데, 연행된 이들의 감각을 지배하려 했던 “원형 계단", 건물과 주변을 분리하기 위해 사용한 “철재 구조의 벽체", 옆 건물인 식당으로의 희미한 연결성만을 가지게 한 “폴리카보네이트 지붕구조물"을 가져온다. 원래 이 재료들, 철제 구조는 지탱하는 봉으로 폴리카보네이트는 반투명의 벽으로, 둥그런 형상으로, 그저 담백하게,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서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계단 너머]라는 작품은 부드럽고 투과적인 형상으로 소리치는 항변이다.

민주인권기념관인 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가짜 간판을 달고 운영될 정도로 자신을 철저하게 노출시키지 않았다. 노출되지 않겠다는 전략을 가진 것치고는 너무나 노출되어 있었는데, 시내 중심부에 시민들의 일상적인 장소에 당당하게 서있어서 누구나 볼 수 있었고, 대기업 사무실로 쓰던 옆 건물과 담을 공유했다. 담은 건물만큼 높지 않아서 매일 출근하고 일하던 직장인들의 창문 너머로 옆 건물은 항상 보이는 위치에 있었을 뿐더러 연행자들의 출입구가 이쪽에 있었다.

그렇지만 건물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틈새 모양의 창으로 벽을 채우고, 옆 건물에는 “이쪽을 쳐다보지 말라”는 공문을 내렸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들의 행위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일말의 윤리적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빨갱이들에게는 노출되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라는 노출증에 걸린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대목이다.

<잠금해제>전은 이런 파시스트들의 욕망에 정확히 부합한 건축물의 존재, 그리고 디자이너의 설계, 기획하는 역량이 ‘배치하는 권력’과 만난 순간을 다시 디자인의 방법으로 해체하여 비평한다. 국가가 주도하고 흔들었던 근대화의 이상, 사회의 다른 요소들과는 완전히 괴리된 채 스스로 완결되어버린 기이한 이상의 형상화로써의 건물-작품을 찬찬히 대면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 <디자인> 5월호에 실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디자인’이라는 기사에서는 기억을 채록하거나 사건을 시각적으로 정교하게 재구성하는 디자인적 실천들, 더 나아가 ‘발언하는’ 디자인이라는 디자인 행동의 여러 방식들을 소개했다.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세월호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팀”으로 언급된 디자인팀 ‘일상의 실천’은, 사진가 홍진훤과 함께 [빨갱이]라는 작업을 5층 고문실에서 선보인다. 이 방에서 떠돌았던 말들은 고문대와 고문 장소에 고스란히 프린트된 증언과 사진으로 앉혀 있다. 그 말들은 다시 떠올라 동시대에도 미세먼지처럼 떠돌고 있는데 고문실은 그 근원지였던 것이다.


홍진훤×일상의실천, <빨갱이>


“빨갱이”라는 말은 하나의 상황 안에만 있는 고유한 표현이 아니라 다른 사건과 상황에서도 사용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관통하는 이데올로기적 세계에서 온 것임은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라진 줄 알았던 냉전의 언어가 세월호를 계기로 다시 튀어나온다. 이는 ‘레드 콤플렉스’가 적대를 만들고 공포를 투사하고 대상을 궤멸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몸에 배어버린 자동적 감각이 되어버렸음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인식하게 한다. 이 병적인 ‘감염체’의 근원지도 이 건물이었을지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 체하도록 뇌를 훈련하고, 본 것을 보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시각 장치로서의 위풍당당하고 아름다운 곳, 일상 속에서 신앙이 된 ‘빨갱이 콤플렉스’의 그릇이 된 장소로써의 건물 말이다. [빨갱이]는 비선형적인 영상으로 편집된 영상으로, 덜컥덜컥 거리지만 여전히 강력한 작동하는 분단국가, 한반도를 반추한다.



김영철, <감각의 증언>


흥미로운 것은 사진 작업들인데, 사건을 가장 고스란히 재현한다고 믿고 있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텍스트에 비해서 ‘증언’, ‘증거’로서의 기능을 갖지 않은 채 단지 언어 그대로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철의 [감각의 증언]은 피해자의 증언을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으로 써 내려간 작업으로, 글자가 힘 있게 살아있고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말 그대로 ‘육화’된 디자인을 선보인다. 그에 비해서 백승우의 사진 작업인, 일련의 [복사 촬영] 시리즈들은 명백하게 재현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이 장소, 관람자가 보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그것뿐이다, 라고 말하는 듯하다.


백승우, <복사촬영#001>


홍진훤의 작업도 마찬가지인데, 사진들이 재현하는 것은 “사건”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미지들이지만, “사건”에 대한 서술, “장소”가 관람자에게 어떤 ‘감각’을 불러일으킬 요량으로 놓인 것이다. 백승우의 사진들은 그 감각의 경로들이 분석되고, 다시 재조합되는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이 디자인의 맥락과 닿기도 한다. 관람자가 경험하는 공간을 같은 스케일로 찍어 재현하고 배치했는데, 이때 관람자의 현실감은 뒤틀어지고, 인식에는 오류가 생기고 세계에 대한 확신은 점점 옅어져 간다. 내가 알고 분명히 보고 있는데 다르게 느껴지는 ‘언캐니(uncanny)’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런 오싹함은 그 공간 내내 나의 곁에 맴돈다. 이로써 관람자가 그 전에 이 공간에 머물렀던 연행자들의 감각을 다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순간적인 시간 이동 같은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언메이크랩, <평범한 장치>


다른 시간대가 동시적으로 연결되는 감각은, 언메이크랩의 [평범한 장치]를 통해서 확장된다. 이곳에서 당대에도 존재했고 현재도 동일성을 유지하며 존재하는 물질은 ‘물’이 유일할지 모른다. 고문실에서도 흘렀고 옆 건물인 식당에서도 흘렀으며, 그 순환은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식당의 낡은 배관을 통해 물이 똑똑똑똑 새어나오고 있는데, [평범한 장치]는 그 물의 존재를 디자인된 장치를 통해 증폭시킨다. 옆 건물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그 물은 음식을 하는 식수로 사용되었을 터인데, 식당의 일상 소음을 재생시킨 사운드 작업을 들으면서 그 물의 흐름과 증폭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이 건물의 ‘해제’시켜야 할 은폐된 것들의 통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격리하려 했지만 물은 흘러 다녔으니, 이 평범한 장치는 이제 물이 상기시키는 기억을 일상 안에서 의미화할 것을 관람객에게 요청한다. 이는 또한 사진과 디자인이 자신의 방법으로 역사를 재현하는 문제이며, <잠금해제>가 해제시켜 드러낸 사실들이 제 자리를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디자인, 우리 사회를 비평하다

지금 내 지갑에는 벨벳 소재의 작은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2014년 이후로 줄곧 달려 있는 이 리본은, 몇 번 잃어버렸지만 곧 다시 달렸다. 소모임에서, 전시장에서, 카페에서 혹은 어느 자리에서 이 작은 노란 리본은 "가져가세요" 라는 이름을 달고 배포되었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요구했다. '이 리본 액세서리는 애초에 누가 디자인한 것일까?'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익숙하고, 반복해서 재생산되며 사람들 사이에 침투하고 있는 "디자인된 사물". 세월호 이후 디자인의 영역에서는 노란 리본을 요소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사회 비평으로써의 디자인이 활성화되고 있다. 디자인은 원래, 메시지를 송출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일으키고, 사회의 질서를 편성하고 일상과 행위를 조직하는, 사회적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 노란 리본이라는 사물은 아직 충분히 통용되지 않았던 디자인의 어떤 면, 이를테면 기억을 매개하고 동시대의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발견하게 한다. 자본주의에서 태어나 그 시스템의 장밋빛 미래를 다시 전시하는 디자인의 태생적 조건의 이면에서 이러한 사회적 요소를 발견하고, 발언하고, 정치적 실천으로 가져가는 앞으로의 흐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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