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기억을 만나다

진실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진실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박한나 작가 / hanna_p@naver.com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경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민주주의 아버지는 우리 남편” 새해 첫날부터 눈과 귀를 의심할 발언이 나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씨의 말이다. 요는 전 전 대통령이 단임제를 이뤘다는 것인데, 1987년 직선제 시행은 그의 의지가 아니라 6월 항쟁으로 시민이 쟁취해냈다. 이 씨의 “우리 남편”이 직접 내린 4·13호헌조치가 첫 번째 증거다. 반박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이 씨 주장은 억지스럽지만, 세 사람만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더구나 전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사자 명예 훼손 혐의 재판을 앞둔 상황임을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도청 지시를 끈질기게 부임하던 미국 닉슨 전 대통령이 스스로 사퇴토록 만든 것은 범죄 연루 사실이 기록된 녹음테이프였고, 우리나라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을 밝혀낸 것도 태블릿 PC에 담긴 위치와 사진, 정부 문서 기록이었다. 사실과 기억의 조작, 왜곡, 은폐, 망각으로 진실이 가려질 때 기록은 묵묵히 우리를 진실로 인도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5월 광주의 기록

1980년 5월의 광주를 세상에 알린 것도 기록이었다. 권력은 진실을 숨기기 위해 교통과 통신을 차단하고 언론 보도를 통제했지만 시민과 기자들은 문자와 영상, 음성으로 광주의 참상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탄압은 계속됐지만 시민들의 용기로 광주 이야기는 묻히지 않고 조금씩 알려졌다. 그러다 6월항쟁을 계기로 1988년 열린 청문회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실상이 전 국민에게 공개됐다.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잔인하고 참혹했지만 기록은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했다.

그래서였을까. 1994년 광주광역시(당시 직할시)는 ‘5·18민주화운동자료실’을 설치해 96년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기록물과 유품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일기, 연설문, 사진 등 민간 자료부터 계엄포고령, 사태일지, 회의록 등 국가 행정 자료까지 방대한 양이 모였다. 2010년 이 기록물의 중요성에 공감한 이들이 모여 ‘5·18민주화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유네스코는 1년여에 걸친 심사 끝에 총 4,217권 858904쪽에 달하는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승인했다.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사업은 세계적 관점에서 중요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해당 기록의 역사적 중요성과 기록물의 진정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5·18민주화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쟁취함으로써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쳤다.”(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 발췌)고 평가한다. 한마디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은 국가권력에 저항한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이었으며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국제사회가 공인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상설 전시실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5·18의 진실을 보호할 방패, 기록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조성은 기록유산 등재 심사과정에서 유네스코와 약속한 것으로, 등재 이후 준비 과정을 거쳐 2015년 5월 개관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건물은 이전까지 광주가톨릭센터로 사용되던 곳으로 역사적 장소인 금남로에 위치하고 있다. 옛 전라남도청과는 불과 300~400미터 거리다. 1987년 광주대교구 신부들이 호헌조치에 저항해 단식 투쟁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기록관 6층에 가면 관련 기록물과 1973년 부임해 시민에 편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윤공희 대주교 집무실을 볼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주요 기록물은 1~3층에서 전시하고 있다. 1층은 항쟁을 주제로 각종 사진과 영상, 조형물 등을 통해 당시 상황과 시민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는 공간이다. 2층의 주제는 기록으로 시민들이 생산한 성명서, 선언문, 취재수첩, 일기를 비롯해 구술 증언 기록 등 기록물을 중심으로 5·18 전개 과정을 살핀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기록물은 주로 이곳에서 볼 수 있다. 3층은 유산을 주제로 세계기록유산 등재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는 공간이다. 등재 인증서와 다른 나라의 인권 기록유산을 살펴보면서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수장고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4층은 5·18민주화운동 자료 및 도서를 읽고 대여할 수 있는 열람실이고, 5층은 기록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수장고다. 수장고는 다양한 기록물을 보존하는 공간으로, 기념관과 구분되는 기록관의 특징적 장소다.

기록관에서 전시와 기록물 보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증언을 기록하고 숨어 있는 자료를 찾아 수집하며 확보한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기획 전시를 열거나 기록관이 아닌 학교나 다른 지역에서 5·18기록물을 활용한 전시도 한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태극기 전시를 준비 중이다. 5·18 당시 시체를 덮었던 태극기와 군용 차량 바퀴 자국이 난 태극기 등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때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태극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밖에 인권교실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기록관을 포함한 금남로 일대를 둘러보는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전문가 포럼 등을 개최하여 5·18기록물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활용되도록 힘쓰고 있다.

일련의 기록관 활동을 “진상 규명을 위한 가장 밑바닥 작업”이라고 김태종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은 설명한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발언이나 주장을 객관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기록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록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게 되면 진상 규명은 저절로 이뤄진다. 김 실장은 5·18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져 더 이상 억지 주장이 나오지 않도록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많은 분들이 진실에 대한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 광주에 방문해서 5·18묘지도 보고 기록관도 둘러보시고요. 그러면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아실 거예요. 그래서 진실이 더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아키비스트는 미래를 위해 오늘의 가치를 남기는 사람"

김태종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 인터뷰


5·18기록물 수집 및 관리를 총괄하는 김태종 연구실장은 1980년에도 관련 기록물을 모아 보관했다. 당시 그가 보관한 자료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5·18 당시 어떤 기록물을 어떻게 보관했나?

당시 열린 궐기대회에서 사회를 맡았다. 그때 여러 사람이 각자 자필로 선언문이나 연설문을 낭독했는데, 낭독이 끝나면 그걸 달라고 했다. 유인물과 함께 보관해 두다가 내가 가지고 있으면 발각될 가능성이 클 것 같아 고교 동창에게 보관을 부탁했다. 이후 몇몇 사람이 돌아가며 소중하게 숨겨 두었다가 2005년 5·18연구소에 기증했다.

선언문과 연설문을 모아 보관할 생각은 어떻게 했나?

아키비스트(Archivist, 기록관리자)의 본능 아니었을까. (웃음) 그땐 기록물의 소중함을 정확히는 몰랐지만 이게 참 중요한 기록이라 생각했다.

왜 기록이 중요한 것인가?

인류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은 기억의 힘이다. 기억은 기록으로 이어지고, 기록은 기억을 되살린다. 기록이 있어서 역사가 발전했고 민주주의도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키비스트는 미래를 위해 오늘의 가치를 남기는 사람이다.

기록의 힘을 느낀 순간이 있다면?

대구와 광주가 달구벌-빛고을, 달빛동맹이라 해서 교류를 많이 한다. 그래서 대구분들이 기록관에 오셔서 전시 관람을 하신 적이 있는데 “내가 오해했다. 참 고생했다.” 하시더라. 사진과 영상 등 기록물을 직접 보고 진실을 아신 거 아니겠나.

앞으로의 목표는?

기록관의 최종 목표는 기록물 활용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기록물을 많이 발굴해서 더 많은 대중에게 진실을 널리 알리고 문화적인 콘텐츠로도 활용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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